요즘은 공기가 맑은 날을 찾기가 어렵다. 봄이면 어김없이 황사가 날아오는데다가 미세먼지는 시도 때도 없이 기승을 부리기 때문이다. 야외 활동은커녕 마음 놓고 환기를 시킬 수도 없어서 답답하다. 알레르기가 있거나 호흡기가 약한 사람은 밖에 잠시 나갔다 오는 것만으로도 몸이 안 좋아진다.
탁한 공기 때문에 몸은 물론 마음까지 지쳐버린 날이라면 저녁 메뉴는 돼지 목살구이가 어떨까? 지글지글 불판 위에서 구워 주면 노릇노릇 먹음직스런 목살구이가 완성된다. 한 입 먹어 볼까? 이런! 아무리 둘러봐도 소금이 없네? 소금이 없다면 고기맛이 밋밋해질 텐데.
출처 GIB
수학의 뿌리를 찾아
소금은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온 조미료다. 수학에도 소금처럼 아주 오래 전부터 사용해 온 정리가 있다. 정리란 이미 옳다고 증명된 명제를 말한다. 논리적인 과정을 통해 정리에서 새로운 결론을 이끌어 내는 방법을 연역법이라 한다. 오늘날 연역법은 수학과 과학의 기틀을 이루고 있는데, 연역법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에게 친숙한 식을 하나를 찾을 수 있다.
a2+b2=c2 (a,b,c는 직각삼각형 세 변의 길이,c가 빗변)
바로 ‘피타고라스 정리’다. 사실 ‘피타고라스 정리’는 피타고라스 혼자만의 업적이 아니다. 기원전 1800년 무렵의 것으로 추정되는 바빌로니아의 점토판에도 직각삼각형의 비(3:4:5, 5:12:13)가 적혀 있다. 피타고라스가 태어나기 1000년 전에 이미 직각삼각형의 비밀이 알려져 있었다는 이야기다.
고향 사모스를 떠나 당시 가장 학문이 발달했던 이집트와 바빌로니아에서 30년 넘는 세월을 보낸 피타고라스는 아마 이 시기에 직각삼각형에 관한 지식을 익혔을 것이다. 기록에 따르면, 피타고라스는 신비로움을 간직한 사원과 학교 곳곳에서 고행에 가까운 시간을 보내며 고대의 지식을 익혔다고 한다.
그리스의 철학자 피타고라스. 출처 위키미디어
튼튼한 뿌리, 피타고라스의 정리
피타고라스가 단순히 신비로운 지식을 수집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친 것은 아니다. 피타고라스는 직각삼각형에 숨겨진 진리를 하나의 명제로 이끌어냈다. 바로 우리에게 익숙한 피타고라스 정리다. 논란이 있지만, 피타고라스는 ‘모든 직각삼각형의 빗변 길이의 제곱은 다른 두 변 제곱의 합과 같다’는 명제를 최초로 증명한 수학자로 알려져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직각삼각형의 비밀을 알고 있던 바빌로니아와 이집트 학자들과 피타고라스의 결정적인 차이는 바로 ‘보편성’이다. 고대의 학자들은 신비로운 직각삼각형의 비 몇 개를 아는 데 만족했다. 일반적인 직각삼각형에 대해선 관심을 갖지 않았다.
피타고라스 정리는 기하학을 보편적인 진리의 단계로 끌어 올렸다. 덕분에 우리는 어떤 직각삼각형의 두 변의 길이만 알면 나머지 변의 길이는 쉽게 알 수 있다. 고대 사회에서 기하학은 가장 실용적인 지식이었다. 땅의 넓이를 계산하거나 별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일이 주된 역할이었다. 모두 매우 중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었지만, 결국 기하학은 어떤 목적을 위한 도구에 머물렀다.
피타고라스 정리가 등장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실용적이던 기하학이 논리적이고 추상적인 지식으로 탈바꿈했다. 흩어져 있던 지식은 보편적인 정리로 모여, 기하학을 떠받치는 기둥이 됐다. 여기에 고대 그리스인의 장기인 ‘연역법’이 더해지자, 기하학은 놀라운 발전을 이룬다.
정리와 연역법을 바탕으로 한 ‘논증기하학’은 시간이 흘러 유클리드 기하학으로 완전히 꽃을 피웠다. 인류의 문명은 유클리드 기하학을 바탕으로 세워졌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오늘날 우리가 피타고라스 정리라는 튼튼한 뿌리 위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이유다.
소금 없으면 무슨 맛?
세계 곳곳을 여행하면서 음식을 멋어 보면 맛이 참 다양하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비슷한 재료와 조리법을 사용해도 맛은 제각기 다르다. 한국의 된장국과 일본의 미소시루를 떠올려 보자. 비슷한 재료와 조리법이지만, 맛은 분명히 다르다. 이유는 된장과 미소라는 양념의 차이에 있다. 우리의 된장에 비해 일본의 미소는 단맛이 나고 냄새도 다르다. 만약 된장찌개를 미소로 끓인다면, ‘일본의 맛’이 느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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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서로 다른 수많은 맛에도 공통점은 있다. 바로 소금이다. 수학의 뿌리에 피타고라스 정리가 있는 것처럼, 모든 양념의 바탕에는 소금이 있다. 간장에서 케첩, 그리고 우스터 소스에 이르기까지 소금이 들어 있지 않은 양념은 거의 없다. 소금은 그 역사를 가늠하기 힘들만큼 오래된 양념이기도 하다.
소금의 또 다른 매력은 ‘보존력’에 있습니다. 어떤 재료든지 소금에 절여 놓으면, 썩지 않고 오랫동안 먹을 수 있다. 삼투압에 의해 수분이 빠져나가고 염도가 높아지면, 박테리아나 세균이 번식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 고기나 생선처럼 빨리 썩는 경우에는 소금이 반드시 필요했다. 냉장 시설이 발달하기 전까지 소금에 절인 고기와 생선은 많은 사람들에게 유일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익숙한 것의 소중함
오늘날 소금은 피해야 하는 대상이 됐다. 여전히 중요한 양념이자 영양소인 건 맞지만, 의식하지 않고 살면 과다섭취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세금으로 소금을 받을 정도로 귀했던 소금이 이제는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됐다.
피타고라스 정리 역시 아무나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지식이었다. 진리가 함부로 퍼져나가는 걸 경계한 피타고라스 학파는 몇몇 사람들에게만 비밀스럽게 지식을 전수하기도 했다. 이런 영광을 누리기 위해선 10년 넘는 시간 동안 빵과 물에만 의지하며 금욕적인 수도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지금은 사정은 다르다. 피타고라스 정리는 중학교만 나와도 쉽게 알 수 있는 공식이다. 유클리드의 증명 이래로 피타고라스 정리를 증명하는 방법도 많이 나왔다. 지금은 인터넷에서 검색만 해도 수많은 증명법을 찾을 수 있다. 피타고라스 정리 증명만으로 책을 엮을 수도 있을 정도다. 실제로 370개 가량의 증명법을 담고 있는 책도 있다.
아무리 흔해도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다. 소금이 얼마나 음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피타고라스 정리가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가끔 둘의 고마움을 떠올려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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