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랙탈-황홀한 눈꽃에 숨어있는 닮은꼴과 순환성


[생활 속 수학이야기](42)프랙탈-황홀한 눈꽃에 숨어있는 닮은꼴과 순환성
우리나라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과 겨울에는 삼한사온이라는 현상이 뚜렷했는데, 요즘은 그런 계절 현상이 많이 변하였다. 10월이 되어도 여름 날씨처럼 덥고, 가을이 오는가 싶더니 며칠이 지나지도 않아서 춥고 눈까지 온다. 사계절 중 가을은 이제 불과 며칠뿐인 모양이다. 12월이 되어서도 그다지 춥지도 않다. 이산화탄소가 많아지고 지구 온난화 현상이 지속되면서 우리나라 기후도 많이 변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표 나무인 소나무도 더위 때문에 남쪽에서는 더 이상 자랄 수 없어서 수십 년 후에는 ‘남산 위의 저 소나무’란 애국가 가사를 고쳐야 할지도 모른다. 바다의 수온도 상승하는 바람에 많이 잡히던 물고기는 다른 데로 가 버리고 새로운 물고기가 잡힌다고 한다. 겨울에는 눈이 많이 왔었고 눈을 구경해 보지도 못한 동남아시아 사람들에게 그 많은 눈은 흥미 있는 볼거리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제 눈이 많이 오지 않으니 그 훌륭한 관광 자원도 없어질 모양이다. 
눈은 정말 신기한 존재이다. 눈이 오는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집 안에서 바라보기만 해도 아름답지만 밖에 나와서 하늘을 쳐다보면 내려오는 눈의 움직임이 정말 환상적이다. 눈을 밟으며 걸어갈 때 나는 뽀드득 소리는 얼마나 듣기 좋은가? 한라산이나 지리산에서 볼 수 있는 눈꽃은 황홀할 지경이다. 그러나 눈이 많이 와서 길이 막히고 조난당할 때는 눈이 원망스럽다. 눈이 녹을 때는 도로가 지저분하고 걸어다니기 불편하다. 
그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본 적이 있는가? 지나치듯 보았다면 올 겨울 눈이 왔을 때 자세히 관찰해 보라. 그런데, 눈의 모양을 설명하는 수학이 있다. 다음 그림을 보자.
먼저 정삼각형을 그린다. 이제 각각의 선분을 3등분하고 가운데 부분에서 바깥으로 작은 정삼각형을 그리고 밑의 선분을 지운다. 그러면 [그림1]과 같은 별 모양이 만들어진다. 각각의 작은 선분에서 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러면 눈과 같은 모양이 나온다[그림 2]. 이런 일을 계속[그림 3] 반복하면 아주 복잡하고 아름다운 모양이 나오게[그림 2] 된다[그림 3]. 
이 그림을 ‘코흐 눈송이’라고 하는데, 복잡하고 신비해 보이는 눈 모양은 이러한 간단한 작업을 계속 반복하여 얻어진 것이다. 코흐 눈송이는 프랙탈의 일종이다. 프랙탈이란 부분이 전체를 닮는 자기 닮음성과 순환성을 가지는 것으로, 1975년 만델브로트라는 프랑스 수학자가 만들어낸 새로운 기하학이다. 프랙탈은 쓰임새가 정말 많다. 번개가 치는 것이나 강의 흐름, 구름의 모양을 프랙탈로 설명하기도 하고, 주식값의 그래프도 프랙탈 현상이며, 우리 몸 속의 허파나 소화기관들은 프랙탈 구조를 가지며 언젠가 여기서 이야기되었던 맹거스폰지도 프랙탈 구조이다. 대학 입시를 위한 수학능력시험에서도 프랙탈과 관련된 문제들이 종종 출제되고 있다. 
그런데, 프랙탈을 가만히 살펴보면 프랙탈에는 알 수 없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을 이용하려는 생각이 반영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눈송이나 해안도로같이 복잡하고 잘 알 수 없는 모양을 내가 알고 있는 어떤 모양이나 과정을 무한히 반복하여 설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은 여러 곳에 적용된다. 예를 들어, 사다리꼴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을 알고 있는가? 공식을 모르더라도 상관없다. 만약 사다리꼴을 삼각형, 직사각형, 평행사변형 등 내가 구할 수 있는 도형으로 변형시킬 수 있기만 하면, 사다리꼴의 넓이를 구할 수 있게 된다.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적분이라는 것도 곡선 아래의 넓이를 구하는 것인데, 곡선 아래를 우리가 구할 수 있는 직사각형의 합으로 보고 구하려는 생각이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를 보면 제갈공명이 놀라운 지혜를 발휘해서 많은 전투에서 승리하는 이야기들이 나오는데, 자세히 살펴보면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즉 자신이 잘 알고 있는 곳으로 적을 유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적은 잘 모르고 우리는 잘 알고 있는 지역에서 싸우면 지리의 이점을 살릴 수 있어서 적어도 지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수학 문제를 풀다가 모르는 문제가 생겨도 당황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이 문제를 내가 풀 수 있는 문제로 어떻게 변형할까? 그렇게 문제를 바꿀 수만 있다면 그 문제는 해결된다. 아는 것으로 변형하거나 아는 것과의 관계를 찾아내는 것, 바로 이것이 문제일 뿐이다. 이런 생각은 수학 문제를 푸는 지혜일 뿐만 아니라 세상을 사는 지혜이기도 하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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